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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1-09-17 17:13

  • 오피니언 > 사설

비는 잘못이 없다

기사입력 2021-08-30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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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를 맞으려다 여론의 뭇매를 맞는 묘한 일이 벌어졌다. 지난 27 강성국 법무차관이 아프가니스탄 특별 입국자에 대한 초기 정착 지원 내용을 브리핑할 때였다. 차관이 야외에서 브리핑하는 동안 수행비서가 차관 뒤에서 10분이 넘게 양손으로 우산을 받쳐들었다. 비서는 아스팔트 바닥에 무릎을 꿇은 상태였다.

법무부의 해명처럼 직원이 방송 카메라에 자기 모습이 잡히지 않게 하려다 보니 생긴 해프닝일 수도 있다. 원인을 따지자면 그날 내린 탓일 있고, 수행비서의 탓일 수도 있고, 방송 카메라 탓일 수도 있다. 본질은 '사람이 먼저'라는 정부에서 무릎 꿇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공직 풍토이다. 당시 주변에 공무원들이 많이 있었으나 여론의 비난이 쏟아지기 전까지는 누구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법무부는 그동안 기회 있을 때마다 인권보호를 강조해왔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인권은 두꺼운 법전 속에 잠자고 있었다. 더구나 그날은 한국에 협력한 아프간 난민에 대한 인권보호 조치를 설명하는 자리였다. 난민 인권까지 챙기는 정부가 정작 자국민의 인권은 살피지 못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법무차관이 스스로 우산을 들거나 차라리 그냥 비를 맞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차관의 브리핑 장면을 보면서 뇌리에 떠오른 인물이 김황식 국무총리이다. 2011 11 총리는 대전 현충원에서 열린 연평도 전사자 1주기 추모식에 참석했다. 행사 시작되자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다. 경호원이 총리의 머리 위로 우산을 펼쳐 들자 그가 말했다. “괜찮다. 치워라.”

총리는 추모식이 진행되는 40 동안 고스란히 장대비를 맞았다. 양복이 내복처럼 몸에 달라붙고 안경 위로 빗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날 총리는 전사자 묘역의 비석을 어루만지며 흐느껴 울었다. 총리가 그냥 비를 맞은 것은 유족들과 슬픔을 함께 하려는 공감정신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사람은 똑같이 존귀하고 평등하다' 민주적 가치는 법규나 구호만으로 실현되지 않는다. 타인의 심정을 이해하고 함께 느끼는 공감 없이는 불가능하다. 공감능력을 지닌 사람은 상대와 마음을 나누지만 그것이 결핍된 사람은 상대를 업신여긴다. 법무부에게 부족한 것은 인권 법규가 아니라 공감능력이다.

출처 배연국의 행복편지 (gc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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