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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0-11-30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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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이의 감옥

기사입력 2020-11-16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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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네로 황제는 재정 수입을 올리기 위해 100%인 데나리우스 은화의 순도를 92%로 낮췄다. 안쪽에 구리를 넣고 바깥은 은으로 도금한 것이다. 구리를 넣은 만큼 정부의 재정 수입은 늘었다. 네로 이후 은화의 순도는 계속 낮아져 3세기 무렵에는 5%까지 떨어졌다. 사람들은 순도가 높은 예전 은화는 집에 보관하고 순도가 낮은 은화만 거래할 때 사용했다. 그러다 보니 시장에 돌아다니는 돈은 온통 저질 은화뿐이었다. 여기서 나온 것이 악화가 양화를 구축(驅逐)한다그레셤의 법칙이다.

 

경제학 용어가 뇌리에 떠오른 것은 근자에 접한 안타까운 나영이(가명) 소식 때문이다. 아동 성범죄자 조두순의 출소를 앞두고 나영이 가족은 끝내 이사하기로 했다. 2008년 초등학교 1학년 여아를 성폭행해 상해를 입힌 조두순은 내달 13일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집 거리는 고작 1정도다. 범죄자와 도저히 가까이 살 자신이 없었던 피해자 가족이 전세를 구해 떠나는 것이다. 결국 조두순은 감옥을 나오지만 나영이의 감옥 생활은 이제 시작되는 셈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상은 우리 사회 도처에서 일어난다. 불의가 정의를 핍박하고 악마가 천사에게 몽둥이를 휘두르는 세상이다. “살아 있는 권력에도 엄정한 자세로 임해 달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를 따른 윤석열 검찰총장은 여권에게 몰매를 맞고 있다. 정권에 꼬리를 흔드는 애완검은 출세가도를 달리고 나라의 도둑을 지키는 워치독은 한직으로 내몰린다. “공직자는 국민과 함께 깨어 있는 존재가 돼야지, 그저 정권의 뜻에 맞추는 영혼 없는 공무원이 돼선 안 될 것입니다.” 대통령의 당부를 실천한 영혼 있는공직자는 개에게 쫓기는 닭 신세로 전락했다.

 

악화가 활개 치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지 않다. 사회 구성원들이 그것을 용인하고 통용하기 때문이다. 나쁜 돈을 만든 나쁜 사람이 있고, 나쁜 돈을 사용하는 나쁜 사람이 존재하는 까닭이다. 지금 악화의 유통을 차단하지 않으면 양화는 모두 사라지고 말 것이다. 저질 은화가 순도 100%의 진짜로 행세하는 기막힌 세상이 온다.

 

 

[출처] 배연국의 행복한 세상

거창인터넷신문 (gci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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